기필코 (at any cost)

기필코 (at any cost) 토론토 대학에 가려는 풍토는 아니다. 2학년 진급시 최대 (up to) 50%를 탈락시키고, 생존 학생 과반수가 학점이 좋지 않아서 (less than decent) 장래진로가 어둡고 (a grim prospect for career), 연구 대학원 중심 대학이어서 학부학생들은 홀대 (short shrift) 받는다2년째 인터넷 한국 신문에 매주말에 실리는 한국 명사 (personality) 들의 회고록 연재물 (installment)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것은 오랜 저항 시인, 반체제 인사 (dissident)였던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 독립운동가의 손자로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  등 3인의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들은 평생 반독재 야당 인사의 아들인 나 자신에게 과거 일을 회상하는 순간을 주었고 막후에서 일어난 굵직한 일들을 알게 했고 한국 현대사 사건들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했다. 이런 좋은 점과는 별도로, 위에 언급한 3 회고록들은 한국 사회와 캐나다 사회의 현저한 차이점에 일깨우게 했는데, 그 현저한 차이점은 언론에서 공인의 삶을 기술할 때 출신학교 (alma mater = 모교) 비중이다. 한국에서는 학연이 사회 깊숙이 넓게 뿌리내려져서 3인의 회고록 저자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think nothing of ~ =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될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거리낌 없이 하다] 당연한 것처럼 사람들을 학연 중심으로 묘사했다. 아주 대조적으로, 이곳 캐나다에서는, 출신학교가 출세 및 고용에 도움 준다거나 장애가 되는 것처럼 시사하는 것은 신성한 것을 방불케하는 최상위의 원칙으로 공평성이 자리 매겨진 (be enshrined into a guiding principle bordering on something sacrosanct) 캐나다 사회 정서에 크게 거슬린다 (repugnant). (나의 고백: 수년 전에 신임교사 채용 인터뷰에 갈 기회에 목이 탄 나는 신임교사 채용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시서류를 들고 그 학교 교장실로 다짜고짜 갔다. 인터뷰 전 접촉을 금지한 법규를 어기고 온 나에게 몹시 당황한 교장이 한 말은 “당신은 지금 나로 하여금 다른 응시자들에게 불공평하게 대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었고 마치 나에게 벌을 주는 듯 나를 인터뷰에 오라 고도 안 했다.) 따라서, 캐니다 언론들은 공인의 출신학교 언급을 마치 금기 사항 인양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다. 뉴스를 꽉 꿰뚫고 있는 (have ~ at one’s fingertips = ~을 꿰뚫고 있다) 나는 토론토 신임 (newly minted) 시장이 토론토 대학교 졸업했다는 것을 정규 언론 매체를 통해서 안 것이 아니다. 지난주에 토론토 대학교 동문회 회보를 통에서 알았다.  캐나다에서는 단지 (sheer) 출신 학교 이름만으로는 (평생 공부하는 지적인 겸손이 뒷받침하는 진정한 실력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구직 및 출세 가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캐나다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대학 지원하는 경향에도 잘 나타난다. 만약 도움 준다면, 캐나다 고등학생들은 기어이 (at any cost =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기필코), 예를 들어, 토론토 대학에 입학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지원생들의 학력을 획일적 기준 (across-the-board/one-size-fits-all criterion)으로 순위를 정하려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조치로, 지원하는 대학에 지원서류 일부로 제출하는 상위 점수 과목 6개 (12학년 영어 학점은 필수) 중 5과목은 지원자마다 다르다. 사악하고 (perverse), 사회를 좀먹고 (corrosive), 식민지 사관 냄새가 얼씬 풍기고, 시대착오인(anachronistic ) 출신학교와 구직/출세 전망 자동 연계 풍토가 아닌 캐나다에서는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자기네들의 다양한 잠재 능력을 자기네 나름대로 가장 잘 계발해서 번영할 수 있는 대학들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상대적으로 관대한 학부과정 입학 정책하에서, 토론토 대학교 합격증을 받았어도, 많은 학생들은 다른 대학들을 택한다.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토론토 대학교와 관련된 사항을 의식해서다. 즉, 전통적으로 학업우수를 강조하는 토론토 대학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할 때 최고 50%의 학생들을 탈락시킨다; 탈락 안되고 졸업까지 하는 학생들조차도 과반수는 학점이 좋지 않아서 직업 및 진로 전망이 어둡다; 그리고, 학계에 내놓을 수준의 학위 논문 써야 하는 대학원 과정 (참고로, 입학생들을 많이 뽑는 프로그램들에서 보는 것처럼 학위 논문 안 쓰고  course 과제물과 major paper 정도가 requirements인 대학원 석사 과정도 많이 있음), 특히 박사 (Ph.D.) 과정의 국제 경쟁력에 학교의 명성을 건 (stake its reputation on ~ = ~의 명예를 ~에 걸다)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토론토 대학교는 본의 아니게 학부 학생들을 홀대 (short shrift) 하게 된다. “A, B, C 단계를 가르쳐 주고, 다른 대학에서는 C와 D 단계 수준의 문제를 시험에 출제하지만,  토론토 대학은 마치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학생들을 쫓아내려고 작심한 듯 X, Y, Z 단계 수준의 문제를 출제한다.”라는 시쳇말이 있다 (a cliche has it that ~ = ~ 시쳇말이 있다;  ~라고 주장하는 시쳇말이 있다). 나라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선진국인지 그리고 민주국가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로서 공평성은 인적자원 게발이 최대로 되도록 국가가 능력 발휘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특정 일부 학교 출신들이 시대착오적이고 사회를 좀먹는 잘못된 선민의식 (entitlement)을 버젓이 갖고 횡행하게 하고 타교 출신들은 평생 들러리서는 (play second fiddle to sb) 삶으로 전락시키는 (reduce ~ to ~) 사회 통념 (conventional wisdom)에서는 공평성이 완전히 실종된다. [이런 잘못된 선민의식과 이에 응어리진 화가 내 눈앞에서 약 14년 전에 충돌했다 (collide). 기술고시 출신 한국 두 공무원이 캐나다 서부 주인 British Columbia와 Alberta 주가 어떻게 지하수를 보호하고 관리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출장 와서 싸움 (duel)을 했다.  당시 토론토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한국 공무원들과 캐나다 공무원들을 위해 유급 통역 부탁을 받고 비행기 타고 서부로 가서 그 출장 온 한국 공무원들과 합류했다. 캐나다 출장 마지막 저녁에 그 두 한국 공무원들은 한국 국영기관에 제출할 보고서를 초안하고 있었다. 공무원 A 씨가 보고서를 자기 의견으로만 채우려고 했다. 공무원 B 씨가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면 A 씨가 “너는 가만히 있어!”하고 버럭 소리 질렀다. 그때 B 씨가 그때까지 꾹 참고 있던 (pent-up) 화를 내면서 (vent) “그럼 저는 ‘딱갈이’하라고 여기 캐나다까지 왔단 말입니까?라고 쏴붙이며 (retort) 대들었다. 잠시 후, 울면서 B 씨는 나한테 와서 그동안 직장에서 A 씨한테 당한 서러움을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소위 (so-called) 최고 대학이라는 곳 출신인 A 씨는 우월감 (feeling superior to others)이 몸에 깊숙이 베여있어서 (be deeply ingrained into sb) 타교 출신 직장동료들을 양심이나 도덕심에 아무 거리낌도 느끼지 않고 (think nothing of ~) 무분별하게 (blithely) 공공연하게 (openly) 직장에서 깔본다고 했다. ] [Google사 사원 채용 심사 위원장은 Google 사에서는 더 이상 (no longer) 학위를 실제 능력, 실력의 표시 (proxy)로 간주하지 (take ~ for ~) 않는다고 NYT 와 인터뷰 (“How to get a job at Google,” 2014, Feb 23) 에서 말했다. Google 채용 심사 위원장이 그런 Google사 방침의 배경으로 말하고 개탄한 사실은 소위 엘리트 대학 출신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능력 배양의 견인차인 항상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 “지적인 겸손 (intellectual humility)”이 결여된 경향이다: Google 위원장에 의하면 “소위 자기는 똑똑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근본적인 자질 관련 실수를 범한다. 즉, 잘되면 자기가 천재여서 잘 된 것이고, 잘못되면 다른 사람들이 바보이거나 자원 결여 때문이거나 시장이 변해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잘못된 선민의식 기반이 실추된 위상을 지닌, 인간의 지적 활동에서 하급 단계에 속하는, 복사기를 연상케하는, 인생의 한때에 불과한 학창시절에 했던, 남이 구축해놓은 지식이 적힌 교과서나 참고서를 암송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습경험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사회통념은 더욱더 어처구니없기만 하다. 진정한 의미의 실력/능력은 상상력 및 독창성을 제고하고, 비평적 사고 활동이 많이 요구되고, 과정 중심의 학습활동인 지식을 스스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이고; 평생 공부의 견인차로서 지적인 겸손성이 요구된다.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선민의식에 경도된 자들한테 주눅 들기 (be subjugated by ~) 를 거부하며 진정한 실력/능력 연마하려고 항상 겸손하게 열심히 일하는 서민 민초 (grass-roots)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민 민초들조차도 무의식적이지만 사실상 불공정한 사회 풍토 강화에 일조하는 격이 되어서 역사의 그릇된 편에 서게 된다. – 토요일, 12월 13일, 2014년, 김진현 씀 –


영어원본은 영어인생 있는 그대로: 고품격 영어표현 실용례 (2015년 초판) ‘기필코 (at any cost)’ 편에 있습니다.


< cost (at any cost) (China’s environmental degradation is a consequence of the blind pursuit of growth at any cost.) > – China’s ravaged farmlands [editorial]. (2014, April 29). NYT태극기중국의 자연환경 악화는 기필코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at any cost”)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무모한 추구의 결과라는 내용의 NYT 사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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