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며 나를 응원했다 (moral support; cheer ~ on)

만원 (overcrowded) 지하철 열차에 비집고 승차하다 (squeeze herself into ~) 벗겨진 하이힐 한짝을 주워 다음 역에서 그녀에게 전달했다 (hand over); 팔방미인 (many-sided) 운동선수인 친구는 마라톤을 함께 (alongside with ~) 뛰며 나를 응원했다 (moral support; cheer ~ on); 낌새 (inkling) 채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나는 많은 점에서 (in many respects)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것들 중에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와 평생 우정이 있다. 그 친구가 지닌 시간을 초월하는 (timelessly) 감동을 주는 (touching) 특징들 (attribute = 특징; 속성)에는 진실함, 솔선수범 (leading by example),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대한 본능적 헌신 (instinctive devotion)이 있다. 나는 1980년에 휴학하고 군 입대 (be drafted into the Army = 육군에 징집되다) 대기하던 4개월 기간 동안 (in the run-up to + N) 서울을 떠나 광주 외곽에 있는 고아원에서 원생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in residence) 영어를 가르치고 땅을 파서 (till) 토지를 만드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광주항쟁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당시 막 출범한 (fledgling) 신군부 당국 (authorities)은 광주항쟁을 빌미로 (seize upon ~ as an excuse for ~ = ~을 ~하는 빌미로 잡다) 전국 대학들에 병력을 투입하고  무기한 대학 휴교령을 내리고 교정을 학생 접근금지구역으로 (off-limits to + N) 만들었다. 그렇지만, 입대하기 전에 기필코 (at any cost) 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급우인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경북 영천 사과 농사 밭이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 생활했고 대학 때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시국 혼란 와중에 그는 갑자기 들어 닥치는 계엄군에 의해 기숙사에서 쫓겨났고 휴대전화도 없고 제반 통신시설이 열악한 당시에 나는 그의 행방 (whereabouts)을 알 길이 없었다. 며칠간 그가 다니는 서울에 있는 교회를 들락날락하며 아무나 붙들고 수소문한 끝에 극적으로 그 친구를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그 친구는 반가워서 나를 어찌나 꼭 끼어 앉았는지 그만 내 안경이 부러져 버렸다.  그 친구와 나는 즉시 근처 사진관으로 직행해서 사진촬영을 했다. 후일 군에 있는 나한테 그 친구가 면회 와서 그 사진을 전달해 주었는데  우리들의 상반신을 크게 찍은 그 사진에는  R.O.T.C. 복장을 한 그 친구와 안경 안 쓴 내가 어깨를 서로 붙이고 나란히 앉아있고 사진 하단에는 “입영전야” “1980. 6. 23” 라고 씌어 있었다. 한국에서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대학 첫 3년간을 영문과 급우로, 기숙사생으로, 종교 동아리 회원으로 공유한 그 친구와 나는 춘계 및 추계 교내 체육대회 때는 출전 경기장에 항상 있으며 서로 응원해주었다 (moral support; cheer ~ up). 팔방미인 (many-sided) 운동선수 (athlete)인 그 친구는 매년 100 M, 멀리뛰기, 높이뛰기 종목 우승을 휩쓸었다 그리고 영문과 대표로 4백 미터 계주 및 축구도 했다. 그런 연승 행진 (winning streak) 가도 가기 전, 즉 경기 시작 전에, 그 친구와 나는 조용한 한구석을 찾아가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했다. 내가 선수 자격으로 (in my capacity as a contestant) 참가하는 유일한 종목인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늦은 오후에는 몸이 많이 지쳤지만 그 친구는 마라톤 경기 시작과 마지막 몇 킬로미터를 항상 나와 함께 뛰면서 나를 응원해주었다. R.O.T.C. 마칠 무렵에 통역장교 선발 영어시험에 합격해서 취득한 통역장교 자격증을 무시하고 북한군과 육안으로 마주치며 근무하며, 야간에는 DMZ 안에서 매복 근무하는  중부전선 최전방 DMZ 수색 정찰대 지휘관으로 그 친구를 임명한 국방부는 그 친구의 뛰어난 운동 기량뿐만 아니라 솔선수범하는 지도력 (leading by example) 기록에 큰 인상 받았음에 틀림없다 (must have + p.p). 군대 제대하고 1982년 초 겨울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국군 수도 통합 병원에 입원 중인 그 친구는 내가 아직 복학은 안 했지만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나를 찾아달라고 대학 측에 요청했다. 최전방 DMZ 안 지뢰제거 임무 수행 중 부하 (underling) 중 한 사람이 실수해서 지뢰가 폭발해서 여러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친구의 두 다리 모두 크게 다친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헬리콥터로 국군 수도 통합 병원으로 급히 후송된 것이다. 매우 뛰어나게 강하고 빠른 두 다리가 허물 허물 (feeble) 하게 된 것을 보고 비통함에 잠겨있는 (be distraught that ~) 나에게 그 친구 본인은 생존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play up ~) 또 그 사실에 감사하며, 쾌활한 표정으로 상황을 긍정적 태도로 대하면서 (put the best face on the situation) 오히려 나한테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talk sb out of sorrow). 병원에서 퇴원 (be discharged from ~) 한 후 장래 결혼관을 나한테 털어놓았다 (confide in me that ~). 사랑이 아닌 동정심으로 (‘out of sympathy’에서 ‘out of’는 이유, 동기를 나타냄) 접근하는 여성은 사양하겠다고 (decline) 했다. 남도의 한 도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나는 내 교직 경력 전체에서 딱 한 번 한 결근을 하고. 1987년 5월 서울에서 올리는 그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다리가 튼튼하든 허물 허물하든 상관없이 항상 그 친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데 본능적으로 헌신한다. 그런 본능적 헌신이 그 친구의 징표 (hallmark)다. 그 친구 어디에서나 사심 없이 본능적으로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do others favors) 헌신성이 빛난다. 그 친구 자신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호의를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베풀어서 특정 에피소드를 잘 기억 못한다. 그렇지만 그의 호의를 받은 사람 (beneficiary)들은 기억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후반 학창시절 강의실에서 영문과 여학생 급우가 배 아파 고통하는 낌새를 채고는 (having an inkling that ~) 살짝 강의실을 빠져나가 (sneak out of ~) 뛰어난 육상실력으로  쏜살같이 약국에 갔다 와서 약을 그 여학생 급우에게 덜썩 내놓았다 (spring sth on sb). 서울 지하철 러시 아워 때 한 여성 승객이 만원 (overcrowded) 전동차에 어렵게 비집고 들어가서 (squeeze herself into ~) 차는 탔는데 하이힐 한 짝이 벗겨져 역 승강장에 남겨진 채 기차는 출발했다. 그 순간에 할법한 자신의 부상당한 다리 걱정보다는 어려운 사람 도와야 한다는 본능적인 헌신이 압도해서 (override) 그 여성 승객의 하이힐 한 짝을 주워서 공중에 흔들며 다음 역에서 내려서 기다리라고 손짓을 한 후 다음 역으로 가서 그 여성에게 하이힐 한 짝을 전달했다 (hand ~over).  전역 후 그 친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본능과 장애인들 어려움 직접 경험이 융합되어 사회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갖게 되어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문에 정진해서 사회사업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회사업 임상경험과 연구 경험이 풍부한 그 친구는 지금 대학원장으로 활동한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 친구의 훌륭한 성격, 높은 인품은 학생들의 존경심 (entitle ~ to sb’s regard)으로 이어지고, 해가 가면 갈수록 (with each passing year), 결혼 주례 서달라는 학생들 요청은 늘고 있다. 그 친구와 내가 계속 어울릴 수 있게 (hang around with each other) 그 친구의 일들이 되어가는 것에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무엇이 작동하는 (at work) 듯하다. 그 친구의 아내와 그 친구는 서울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의 아내는 내가 고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남도의 도시가 고향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처가에 올 때마다 짬을 내어 (on the sidelines of ~) 나와 어울릴 수 있었다.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그 친구와 나는 계속 매년 여름과 겨울에 만난다. 한국의 여름 방학과 겨울방학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 친구는 이곳 토론토에 와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세계 수준급 대학 도서관 자료를 이용하며 연구한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이곳 토론토 나의 집에서 우리 가족이 그 친구와 그의 아내 및 위에서 언급한 영문과 동기 여학생 급우의 장남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친구에 관한 추억을 나누는 동안, 나는 그 친구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항상 (unfailing) 본능적으로 남에게 헌신하는 그 친구의 됨됨이를 새삼스럽게 부러워했다. 확실하게 그 친구는 의미 있는 인생 실현 방향으로 많이 진행된 (well on the way to + N) 삶을 살아오고 있다. – 토요일, 1월 31일, 2015년, 김진현 씀 –


영어원본은 영어인생 있는 그대로: 고품격 영어표현 실용례 (2015년 초판) ‘만원 지하철 열차 (overcrowded)’ 편에 있습니다.


< overcrowded (an overcrowded ferry) > About 400 people are feared to have been drowned in Bangladeshi after an overcrowded ferry sank after being sucked into whirlpools on a rain-swollen river. 200 people swam to shore or were rescued. The ferry was only licensed to carry 300 passengers. – (captioned headline). CBC TV. July 9, 2003 – 방글라데시에서 홍수로 부풀어진 강의 소용돌이에 만원 (“overcrowded”) 선박이 빨려 들어져 침몰한 후 익사했을 것으로 우려되는 승객수가 약 400명에 이르며, 그 선박은 정원이 300명이었다는 내용의 캐나다 공영 CBC TV 간추린 뉴스 자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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